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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

히말라야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여성 산악인 오은선 씨가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까지 단 1개 봉우리만을 남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3일 8068m 가셔브룸Ⅰ정상을 밟은 오 씨가 마지막 남은 안나푸르나(8091m) 등정에 성공할 경우,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기록하게 된답니다. 기쁜 일입니다. 근데 가슴 한 편이 쓰리고 아릿합니다. 얼마 전 낭가파르바트 하산 도중 추락사한 고(故) 고미영 씨 때문입니다.

고미영 씨 사고 이후 대한민국 산악계로 쓴소리가 쏟아졌습니다. ‘여성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란 타이틀을 놓고 벌어진 오 씨와 고 씨 간 무리한 경쟁이 화를 불러왔단 비난이었습니다. ‘최고’ 혹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아야 비로소 조명 받는 산악계의 ‘승자독식주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쳐온 두 여성 산악인을 ‘과열경쟁’의 희생양으로 삼는 건 옳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오 씨와 고 씨는 한국에 머물 때 매일 만날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죠. 누군가가 해외원정길에 나설 때면 진심을 다해 응원하는 그런 사이였다죠.

‘과열 경쟁’에 따른 인재였는지, ‘선의의 경쟁’에도 어쩔 수 없었던 불의의 사고였는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결코 히말라야를 두고 세속적인 다툼을 벌이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제가 본 히말라야는 ‘어머니’이고 ‘스승’이었습니다. 산을 동경하는 사람들은 산을 닮기 마련입니다. 히말라야를 오롯이 가슴에 품은 그들에게 그런 옹졸한 마음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안나푸르나 등정을 남겨 둔 오은선 씨를 응원하며, 고(故) 고미영 씨를 애도하며 지난날 히말라야에 올랐던 저의 단상을 바칩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이름이 희한하네. 도시 이름에 웬 만두냐."

어렸을 적 지도를 펴놓고 친구들과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네팔이란 나라는 그렇게 생소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머리가 굵어진 후에도 마찬가지. 왕이 다스리는 나라(현재는 공화국으로 전환 중이다), 국민소득에 비해 행복지수가 높은 후진국 정도가 네팔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적어도 네팔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고작 보름간의 여정으로 네팔에 대해 논한다는 건 건방을 떠는 일이다. 다만, 이번 여정을 통해 나는 히말라야 중턱에 자리한 이 힌두인의 나라에 대해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네팔은 산악국가다. 만년설의 히말라야 산맥이 나라 전체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수도 카트만두를 거쳐 히말라야 등정을 위한 베이스캠프인 포카라에 발을 디디는 순간, 네팔인에게 산은 숙명이란 걸 깨닫는다.

포카라에서는 고개만 돌리면 8000m급의 설산이 눈에 밟힌다. 여염집 담장 뒤로, 골목길 전신주 너머로 어김없이 웅장한 산이 자리하고 있다. 심지어 뒷간에 앉아 일을 보다 고개를 들어도 처마 사이로 히말라야를 감상할 수 있다.

네팔인은 히말라야를 '어머니'라 부른다. 그래서일까. 산을 닮은 그들은 하나같이 순박하고 착했다. 그 덕에 여행 내내 사주경계를 늦추지 않던 나는 모처럼 홀가분한 기분으로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히말라야가 자식들에게 물려준 건 비단 심성만이 아니다. 포카라는 대자연을 만끽하려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연일 북새통을 이룬다. 이들이 지출하는 관광비용은 도시를 떠받치는 주요 수입원이다. 히말라야는 변변한 공장 하나 없는 포카라의 젖줄인 셈이다.

히말라야의 또 다른 이름은 '스승'이다. 산을 오르려, 혹은 그저 산을 바라보려 네팔을 찾는 이들 모두 제 나름대로 깨달음을 안고 집으로 향한다. 애써 배우려 하지 않아도 '트레킹'을 통해 거대한 설산을 마주할 때면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나 역시도.

등산과 맥을 같이하는 트레킹의 목적은 8000m급의 설산을 좀 더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 산을 오르거나, 좌우로 횡단하는 행위다. 등산로가 한정된 우리네 산에 비해 규모가 큰 히말라야의 트레킹 코스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나는 3000m 상당에 자리한 푼힐(Poon Hill) 전망대를 목표로 나흘짜리 코스를 택한 후 히말라야에 발을 디뎠다. 산이라면 군대에서 지겹도록 오르내린 예비역 병장이다. 자신에 찬 발걸음이 가볍다. 콧노래도 새어 나온다.

한 시간이나 채 지났을까. 평탄하던 산길이 굽이치더니,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졌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 오 듯 흘렀다. 좀 전의 거만함을 탓하는지 히말라야의 산등성이는 점점 더 경사를 높였다. 기다시피 산을 오르다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악을 쓰며 걷기를 수 시간, 한계가 왔다. 다리가 꼬이고 발목이 제 맘대로 꺾이더니, 결국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무렇게나 등을 기대고 돌아앉는 순간, 히말라야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웠다.

쉼 없이 산을 오르느라, 그동안 등 뒤로 펼쳐진 풍광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산등성이를 바라봤다. 5월의 녹음 사이로 시원한 물줄기의 계곡이 장관을 이뤘다.

인생도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스쳐 보내야 할까. 그중에는 분명히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무언가가 있으리라. 가끔은 삶에도 '쉼표'가 필요한 이유다.

우여곡절 끝에 해발 3000m 높이에 자리한 푼힐 전망대에 올랐다. 이른 새벽의 일출, 설산을 휘감는 벌건 빛의 향연은 그간의 고생을 충분히 보상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트레킹 코스로 푼힐을 선택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다양한 지점에 전망대가 있다 보니 가끔 트랙킹 코스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때가 있다. 누구는 "더 높은 곳에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는 "왼쪽 쪽 측면이 훨씬 멋있다"고도 말한다.

이에 대해 십수 년간 트랙킹 가이드를 해 온 현지인의 말이 인상적이다.

"설산은 어느 지점에서 바라보나 그 만의 독특한 멋이 있다. 고도가 높건 낮건, 좌·우측이건 상관없이 하나같이 경외롭다. 당신은 그저 자신의 취향과 시간, 체력을 고려해 적절한 목표를 정하면 된다."

좀 뜬금없긴 하지만 이 말을 듣는 순간 소싯적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꿈은 원대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학창시절 통지표 귀퉁이의 '희망사항'란에 소박한 꿈을 적었다간 주위에서 타박이 날아들기 일쑤다. 자의든 타의든 열에 아홉은 '과학자'나 '의사', '판·검사'를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된 후에도 지향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 명예, 권력, 돈 등 행복을 재는 잣대가 정해져 있다.

자꾸만 현지 가이드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고도가 높건 낮건, 좌·우측이건 하나같이 경외롭다….